전쟁 1년 반) 어차피 연내엔 힘들다? 장기전 대비하는 우크라-서방 군지도부
전쟁 1년 반) 어차피 연내엔 힘들다? 장기전 대비하는 우크라-서방 군지도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8.28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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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리(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가 옳았어."
미국에서는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이 지난 겨울에 시작되었어야 했다고 믿는다. -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2
"장미빛 이야기는 이제 그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장기전이 본격적으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발레리 페카르 키예프(키이우) 모길랴 대학 교수

러시아군의 1차 방어선을 돌파하고 반격 작전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우크라이나 일부 언론 보도와는 달리, 이제는 내년 봄을 기약하고 반격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미 군사 전략가들이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반격 작전에서 주요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내년 봄을 기약하기로 했다고 지난 12일 보도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를 겨냥해 발사하는 장거리 미사일(영국의 스톰 섀도/편집자)도 '쓸데없는 귀중한 탄약 소모'라는 지적도 미 CNN 방송을 통해 나왔다.

'장기전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전황'이라는 분석은 미국의 정치 풍향계에서 먼저 감지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18일 익명의 관리들을 인용, 미국 지도부는 '러시아와의 협상을 지난 겨울에 시작했어야 한다'는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의 주장에 뒤늦게 동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밀리 장군은 지난해(2022년) 11월, 최전선이 안정됐고(교착 상태/편집자),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의 승리가 이미 군사적 수단으로는 달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겨울에 협상을 위한 창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우크라이나군은 반격을 통해 북부 하르코프(하르키우)주(州)와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 일부 점령지 탈환에 성공하는 등 사기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캡처2-우크라군 탱크 헤르손 진입 탱크 대통령실
지난해 가을 수복한 헤르손시에 진입한 우크라군 탱크/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한 고위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현지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른 협상을 추진할 기회를 놓친 것 같다. 밀리가 옳았다"고 말했다. 동시에 "(부분동원령에 이어 계약병 모집이 순조롭고, 최전선 방어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편집자) 모스크바는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 미 행정부내에서는 전쟁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점점 더 많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그같은 고민은 크림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이 '귀중한 자원 낭비'라는 미 백악관 분위기에서도 일부 포착됐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CNN은 백악관 일부에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미사일 공격이 기껏해야 러시아군의 주의를 흐트리고, 최악의 경우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그같은 공격을 우크라이나가 자국민을 향해 '우리도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평가절하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군사적으로 거의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는 CNN에 "크림반도 공습에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며 "남부지역 반격에만 집중하는 게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6일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촌가르 다리'를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로 폭파하는 등 최근 몇주간 간헐적으로 크림반도 공략에 나섰다. 

미 백악관/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에 손상된 촌가르 다리. 이 다리는 두어차례 공격을 받았다/사진출처:텔레그램, 스트라나.ua 

문제는 우크라이나군의 다양한 공격 전술에 대한 미국측의 냉정한 평가다. 점령지 탈환을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적어도 3곳으로 반격에 나섰고, 모스크바 등 본토와 크림반도를 겨냥해 드론·미사일 공격을 계속하고 있지만, 미국측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는 끝났고 내년 봄을 기약하자'는 주장이 서방 진영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게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진단이다. 

스트라나.ua(8월 13일자)에 따르면 WSJ은 서방의 군사 전략가들과 정치인들이 반격작전의 진행 속도를 근거로, 러시아군을 점령지에서 몰아내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투쟁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내년 봄 공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전쟁이 1년 6개월을 넘어 2년, 3년의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또 하나의 '시그널'이다. 

그럴 경우, 미국(서방) 측의 고민은 두가지다. 전쟁이 길어지면, 서방의 대우크라 지원에 대한 불만 여론이 고조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반격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하는데, 그게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장기전에 끝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서방 측이 아무리 지원태세를 굳건히 하더라도,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반격에서 병력과 탄약, 사기 등 전투력을 너무 많이 잃을 경우, 장기전 전망도 불투명해진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군이 내년 봄까지 나토 회원국에서 나토의 군사장비로 더 많이 훈련받을 수 있는 시간을 번다는 점이다. 나토 장비에 숙련된 우크라이나군은 지금보다는 몇배나 더 잘 싸울 수 있다는 기대다. 

또 하나. 미국의 F-16 전투기가 전장에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F-16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찬반이 엇갈리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북돋우는 상징적인 의미도 엄청 크다. 나아가 F-16 전투기 제공과 함께,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미국산 드론, '리퍼(Reaper) MQ-9'의 출현도 기대해볼 수 있다. 

미국의 F-16전투기(위)와 리퍼 MQ-9 드론/사진출처:위키피디아, 영 국방부

우크라이나 당국도 장기전에 대비해 동원체제 강화를 촉구하는 분위기가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다. 
스트라나.ua는 18일 "우크라이나 당국이 제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내세웠던 항전 구호인 '전방을 위해 모든 것을,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все для фронта, все для победы!)를 내세우기 시작했다"며 "이는 당국의 장담과는 달리 지난 6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곧 승리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치에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이리나 베레쉬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전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우리는 정직해야 한다. 이 전쟁에서 승리의 길은 멀고도 험난할 것"이라며 "앞으로 2~3주? 연말까지? 내년 봄?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니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장기전에 대한 정신 무장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후방에서는 이미 전쟁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우크라이나 의회(최고 라다) 국가 안보및 국방위원회의 예고르 체르녜프 부위원장은 "동원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4단계의 동원령에서 우리는 이제 2단계에서 3단계, 4단계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전선에 병력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알렉세이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 국방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장관급)은 26일 방송 인터뷰에서 "군이 대통령에게 징병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며 "전시 동원은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군에게 필요한 규모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동원 확대를 확인했다.

일각에서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460년 전통의 키예프 모길랴 대학(Националь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Киево-Могилянская академия) 경영대학원(비즈니스 스쿨)의 발레리 페카르 교수는 SNS를 통해 "지금까지 당국이 내놓은 핑크빛 이야기는 더 이상 믿지 말라"며 "우리에게는 승리전략 자체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견디면 이기는 것이지만, 우리는 영토 수복이 끝이 아니라, 또다른 전쟁의 시작"이라며 "우리에게는 무슨 전략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 측이 '예측하기 힘들다'고 인정한 러시아는 전쟁의 조기 종식에 반대할까?
스트라나.ua는 21일 '협상인가 전면전인가?'(Переговоры или тотальная война?)라는 코너에서 러시아 유명 '올리가르히' 올레그 데리파스카의 뜬금없는 9월 말 협상설을 소개하면서 '영토와 나토 가입을 맞바꾸자'는 나토 사무총장실의 스티안 옌센 실장의 발언을 꺼내들었다. 미국의 재정 악화를 근거로 협상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데리파스카의 조기 협상설과 옌센 실장의 '빅딜'을 연결시키는 듯한 논조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이야기할 때, 러시아가 이에 순순히 응할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러시아내 '매파'(전쟁 강경파)는 그동안 계엄령 선포와 총동원령을 통해 완승을 거두자고 촉구하지만, 뒤따르는 사회적 폭발력을 우려하는 크렘린은 '추가 동원설'에 선을 그어왔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크렘린 일각에서는 크림반도로 통하는 육로의 확보 등 이미 달성한 군사적 성과에 만족하며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은 "정상적인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사회적 혜택이 증가하고 있다" 등의 발언으로 '전쟁의 그림자'를 지우는 듯한 모양새다. 

잘루즈니 우크라군 총참모장(가운데)이 폴란드 접경 지역에서 라다킨 영국 참모총장, 카볼리 나토주둔군 사령관과 지난 11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세 사람은 현재의 반격작전과 다가오는 동계 작전, 장기전 전략 등을 두루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그렇다면 러-우크라-미국 간의 '빅딜'은 가능할까? 
미 WSJ은 일부 서방 관리들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그랜드 딜'을 궁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의회가 '평화를 위해 영토를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결의안을 채택되는 등 빅딜에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전쟁 장기화와 이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와 돌발 핵전쟁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서방 측과 우크라이나의 영토 수복 의지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앞으로 몇 년 더 지속되는 '장기전'으로 빠져들 위험이 높다고 스트라나.ua는 우려했다. 동시에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우크라이나가 더이상 친서방 노선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한 '특수 군사작전의 목표'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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