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을 덮친 모스크바 콘서트홀 테러, 주러 미 대사관이 경고한 바로 그 사건?
'불금'을 덮친 모스크바 콘서트홀 테러, 주러 미 대사관이 경고한 바로 그 사건?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3.23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타는 금요일 밤'(불금)에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대형 쇼핑및위락(慰樂) 복합단지의 콘서트 홀이 불타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rbc 등 현지 언론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 등에 따르면 모스크바 외곽 북서부의 크라스노고르스크(모스크바 수도권에 있는 도시, 우리 식으로는 의정부시 같은 곳/편집자)에 있는 '크로쿠스 시티(Крокус Сити) 복합단지'내 콘서트홀인 '크로쿠스 시티홀'에서 22일 밤 8시로 예정된 러시아의 록그룹 '피크닉'의 공연을 앞두고, 무장 괴한들에 의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최소 5명의 무장괴한이 공연장으로 난입해 1층 로비와 착석한 관객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휴대한 폭발물을 터트렸다.

이 사건으로 공연장에 입장하거나, 공연을 기다리고 있던 시민 최소 60명이 사망하고, 140여명이 부상했다. 입원한 부상자 중 60여명의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져 희생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괴한 2명이 배낭 속에 넣어온 것으로 보이는 폭발물을 터뜨려 화재가 발생하고 지붕이 일부 무너지는 바람에 희생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건물안으로 들어온 무장괴한들이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영상 캡처

러시아 당국은 즉각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스크바의 신속대응 특수부대(SOBR, 러시아어로는 СОБР, Специальный Отряд Быстрого Реагирования, 일종의 대테러부대)와 무장 경찰 '오몬'(OMON), 소방대, 구조요원들을 대거 현장으로 급파, 무장 괴한들의 제거에 나서는 한편, 인명 구조 및 화재 진압을 시작했다. 또 구급차 50여대가 투입돼 부상자들을 모스크바 병원으로 실어날랐다. 입원한 110여명 가운데, 60여명은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중대범죄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는 이번 총격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고, 동원령을 선포하기 위한 러시아 측의 자작극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비상사태부,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모스크바 SOBR 특수부대가 사건 현장을 통제하며 범인 색출 작업을 펼치고 있다. 모스크바 경찰청도 “건물에서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괴한들을 수색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시민 100여명은 건물 지하를 통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으며,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시민들에 대한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모스크바 비상사태부는 전했다. 그러나 괴한들의 사살이나 검거 등에 대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총격 사건 발생 2시간 여가 지난 21시 30분(모스크바 시간)쯤, 크로쿠스 시티홀에서 두번째 폭발음이 울리고, 건물 지붕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괴한들이 공연장 건물 안에서 무차별로 창문과 관객들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들과 놀란 사람들이 출구로 몰려가는 모습들이 담긴 영상들이 다수 올라왔다. 또 총에 맞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고, 공연장 건물 위로 검은 연기가 치솟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인터넷으로 공유됐다. 

◇ 주러 미대사관의 테러 경고와 어떤 상관 관계?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이번 사건은 "피비린내 나는 테러 공격"이라며 "국제사회가 이를 규탄해줄 것"을 요구했다. 

현지 일부 언론은 주러 미국대사관이 지난 7일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 발표와 사건간의 연관 관계를 따졌다.

이와 관련, 알렉산드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사건 직후 “지난 7일 미국 대사관은 모스크바 거주 미국인들에게 쇼핑센터를 방문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영국도 그 뒤를 따랐다"며 "이는 그들의 정보 기관이 특정 통신의 정보를 가로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존 커비 백악관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소통 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끔찍한 총격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를 표시한 뒤 "주러 대사관 경고가 이번 사건을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이번 사건에 대해 미리 알았다는 정황은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나 우크라이나인이 총격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주장했다.

화염이 치솟는 '크로쿠스 시티' 복합단지의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의 안드레이 유소프 대변인은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은 푸틴 정권에 대한 고의적인 도발"이라며 "국제사회가 이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다리아 자리브나야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도 "이번 사건도 이전과 새로운 게 없다"며 "서방 대사관은 임박한 테러 공격에 대해 경고했다"고 말했다. 

미하일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우크라이나가 이번 테러 공격에 연루됐다는 러시아측 주장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크로쿠스 테러 공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 사건 재구성 

22일 밤 8시로 예정된 록 그룹 '피크닉' 공연에 들뜬 '크로쿠스 시티홀'의 입구는 뒤늦게 입장하는 시민들로 부산했다. 그러나 홀 안은 이미 착석한 관객들이 느긋하게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등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들리는 총소리. 일부 사람들은 공연 축하 폭축행사가 진행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모스크바 외곽순환도로(MKBD) 옆에 위치한 대형 복합 단지 전체를 울리는 따따다다 자동소총 소리는 축하 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위장복을 입은 최소 5명의 괴한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며 건물 안으로 난입했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관객들을 향해 'AKM 돌격소총'(소련제 칼라쉬니코프 소총, AK-47 소총의 개량형/편집자)을 난사했다.

한 목격자는 "수염을 기른 무장 괴한 5명은 훈련받은 전사들 같았다. 건물에 들어서자 경비원들과 문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한 다음, 문을 막았다"고 말했다. 또 "최소 두 명은 폭발물이 든 배낭을 들고 있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총격 소리에 공연장 안의 관객들은 출입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순간, 1층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대 위로 몸을 피했고, 많은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좌석 뒤로 몸을 피했다. 죽은 듯이 얼어붙은 '공포의 시간'이 흘러갔다. 

총소리에 문쪽으로 몰려가던(위) 관객들이 한순간 죽은 듯이 얼어붙었다./영상 캡처 

뒤늦게 '크로쿠스 시티홀'에 도착한 한 목격자는 "입구에는 늦게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며 "갑자기 줄 뒤쪽에서 총격이 시작됐고, 사람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괴한들은 총을 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홀 안에 있었던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의 기자는 "홀 안에 있던 사람들은 10여분간 총격이 이어지자 바닥에 엎드렸고, 안전이 확인되자 기어나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다른 목격자는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몰랐다"며 "당황한 사람들은 무대를 가로질러 출구로 빠져나갔다"고 증언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사건 현장은 우리가 영화에서 늘 봤던 죽음의 공포 그 자체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총격 사건이 '실제 상황'인줄 몰랐던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맡긴 옷과 소지품을 챙기지도 못한 채 건물 밖으로 달려나갔고, 일부는 건물 지하로, 일부는 옥상 위로 대피했다. 그 상황에서도 ANK 소총의 총소리는 끊임없이 건물안에 울려퍼졌다. 

한 목격자는 “총소리에 1, 2분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며 "상황이 파악된 뒤 바로 지하철 방향의 출구로 달려갔는데, 에스컬레이터에는 사람들이 몰려 밀치고 넘어지고 아수라장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과 창문을 부수고 있었다고도 했다. 

다행히 공연을 준비중이던 '피크닉' 그룹 멤버들은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크로쿠스 시티 홀/영상 캡처

한바탕 대피 소동이 벌어진 뒤,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복합단지의 건물 1만3000㎡가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무장 괴한 3명이 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총질을 하고 있다. 배낭을 멘 2명은 폭발물을 설치하러 간 것으로 보인다. 

총격 사건이 발생한 '크로쿠스 시티홀'은 상업용 부동산 건설 및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크로쿠스 그룹'이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지은 복합 단지의 일부다. 2009년 10월 준공된 이 복합단지는 '크로쿠스 시티 (콘서트)홀'과 '크로쿠스 시티 엑스포 전시장', '크로쿠스 시티 쇼핑센터'로 구성돼 있다. 수용 인원은 최대 1만명.

◇ 러시아 당국의 후속 조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사건 발생 직후 긴급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고 필요한 조치를 지시했다"며 "대통령은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테러 공격 의 가담자및 배후 조직에 대해 '보복 조치'를 다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 키예프(키이우) 정권이 간여한 것으로 확인되면, 그들을 모두 테러리스트로 보고 무자비하게 파괴해야 한다"며 "죽음에는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시 교통당국은 지하철 승객에 대한 검사를 강화했고, 차량 호출서비스인 '얀덱스 택시'(Yandex.Taxi) 측은 '크로쿠스 시티' 지역에서 탑승한 모든 승객들에게 공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얀덱스 택시 측은 비용을 지불한 시민들에게는 이틀내 환급 조치를, 운전자에게는 회사가 비용을 전액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연방항공국은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와 도모데도보, 브누코보, 주코프스키 등 4개 공항의 보안 조치를 강화했다며 탑승객들은 평소보다 일찍 공항에 와 보안검열을 받으라고 통지했다. 

러시아 교육과학부는 대학들에게 주말 대규모 행사를 자제하고 토요일에는 학생들을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도록 권고했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이번 주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모든 스포츠, 문화 및 기타 공개 행사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의 거의 모든 극장과 박물관은 23일, 24일 문을 닫기로 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역사 박물관도 당연히 휴관한다. 볼쇼이 극장은 물론, 체호프, 소브레멘니크(현대), 타간카 등 주요 공연장의 공연도 취소됐다. 

모스크바 쇼핑센터 연합의 알렉세이 블륨킨 부회장도 산하 쇼핑 센터가 보안 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며 주말에 예정된 각종 공개 행사를 스스로 취소했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