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도박? EU, 러시아 동결 자산 수익을 우크라 무기 구입 자금으로 사용할까?
위험한 도박? EU, 러시아 동결 자산 수익을 우크라 무기 구입 자금으로 사용할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3.22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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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동결한 러시아 자산의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금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이를 21, 22일 벨기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 의제로 올렸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친러시아 성향의 헝가리는 물론, 중립국 오스트리아마저 이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져 현실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27개국 회원국을 대표하는 이사회(장관급 모임)에 연간 25억∼30억 유로(약 3조 6천억∼4조 4천억원)의 러시아 동결자산 운용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금으로 활용하자고 20일 공식 제안했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재건및 재정 지원 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EU 정상회의/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이를 위해 EU는 지난 2월 러시아 동결 자산에서 파생된 수익금을 우크라이나를 위해 사용하는 메커니즘을 승인했다. 100만 유로(약 14억원) 이상의 러시아 자산을 보유 중인 EU내 모든 중앙예탁기관(CSD)은 수익금을 러시아 자산 원금과 분리해 별도 회계로 관리하도록 한 것. 또 별도 회계에서 나온 수익금(형식상 2차 수익금)을 매년 우크라이나의 무기 구입 대금을 지원하기 위한 유럽평화기금(EPF)과 우크라이나 복구및 재건 지원 기금, 두 곳에 각각 이전하기로 했다. 복구및 재건 지원 기금은 EU가 이미 승인한 500억 유로 규모의 다년간 우크라이나 지원 프로젝트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미국의 대(對)우크라 추가 지원안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포탄(및 군사장비) 부족으로 우크라이나군이 주요 전선에서 밀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무기 지원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는 게 EU 측의 설명이다.

러시아 온라인 매체 rbc에 따르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후 EU와 G7 국가들은 현금과 증권, 채권 등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약 2,820억 달러(2,600억 유로)를 동결했다고 미 재무부가 밝혔다. 이 중 3분의 2 이상(약 2천100억 유로)가 EU에, 그것도 대부분이 벨기에에 있는 EU 중앙예탁기관인 '유로클리어'(Euroclear)에 예치돼 있다. 유로클리어는 이 자산을 재투자 등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예상 밖의 수익'을 얻었는데, 이를 러시아에 돌려주지 않았으니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횡재 수익으로 불린다. 

벨기에에 있는 유로클리어 본부/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2022년 기준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자산을 모두 약 3,000억 달러로 추산했고, 러시아 언론은 '유로클리어'가 2023년에만 44억 유로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EU 집행위의 이날 제안은 스스로 연간 25억∼30억 유로로 추정한 러시아 동결자금의 운용 수익 중 약 90%를 유럽평화기금으로 돌리고 10% 정도만 우크라이나 복구및 재건 비용으로 활용하자는 수정안이다. 또 수익금의 일부는 향후 러시아의 소송에 대비한 법률 비용과 운영비 등으로 남겨둘 계획이다. 

EU는 현재의 국제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2027년까지 4년간 러시아 동결자산에서 150억 유로(약 21조 8천억원)에서 최대 200억 유로(약 29조원)의 세후 이자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매년 37억5천만 유로~50억 유로의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계산인데, 25억~30억 유로만 수익으로 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EU 고위 당국자는 이날 "이같은 제안에 대한 승인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면, 오는 7월에 (유럽평화기금으로) 첫 번째 수익 이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구상이 실행되려면 27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지만,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일단 유력하다.

우선, 독일 등 일부 회원국이 수익금 사용의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역내에 예치된 제3국 자산이나 파생 수익을 사실상 '임의로' 활용하는 것이 거의 전례가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동결자산의 수익을 임의로 사용하면 향후 유럽에 대한 제 3세계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 고위 관리는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자금은 EU 중앙예탁기관이 얻은 수익금이므로,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 돈에 대해 주장할 권리가 전혀 없다"며 "법적 소송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2022년부터 발생한 전체 이자가 아닌, 지난 2월 도입된 별도 회계 처리에 관한 새 규정의 도입 이후 창출된 추가 수익에만 적용돼 더욱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친러 성향의 헝가리는 예상대로 수익금의 군사적 사용에 반대했다. 독일의 공영 TV 채널 도이치 벨레는 "헝가리가 동결 자산의 수익금이 어떤 용도로든 사용되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무기에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제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러시아 동결 자산 수익금의 군사적 사용에 반대하는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영상캡처 스트라나.ua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도 21일 우크라이나 무기 구입을 위해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수익을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네함머 총리는 EU 정상회담에 앞서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복구하기 위해 러시아 자산을 사용하는 개념은 지지하지만, 군사적 사용에는 반대한다"며 "우리가 승인한 돈이 무기와 탄약 구매에 쓰이지 것이 중립국인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원국의 반대 기류를 감지한 EU 당국자도 "이번 정상회의에서 이 아이디어가 '괜찮은 방향이며 향후 수주간 해결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자'는 수준의 합의가 나온다면 그 자체로 꽤 환영할 만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사국인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EU의 이 구상은 (러시아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약탈이자 절도 행위"라면서 "강행 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서방측에 예탁한 자국의 자산에 손을 대는 것은 "전례 없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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