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협상 수석 대표 아라하미아가 전하는 '지난해 3월 평화협상'의 진실
러-우크라 협상 수석 대표 아라하미아가 전하는 '지난해 3월 평화협상'의 진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1.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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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한달여만에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에서 '평화 협정안'(초안)이 타결됐으나, 우크라이나가 이를 번복했다는 게 러시아측 주장이다. 그동안 공식 대응을 자제했던 우크라이나 측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러시아와의 세 차례 평화 협상에 참여했던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 '인민의 종' 대표 다비드 아라하미아가 24일 침묵을 깬 것.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요구 조건인) '중립국' 지위에 동의했다면, 전쟁은 2022년 봄에 끝났을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여성 언론인 모세이추크와 대담을 갖는 아라하미아 '인민의 종' 대표/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아라하미아 대표는 24일 여성 언론인 나탈리야 모세이추크와 가진 TV 채널 '1+1' 대담에서 "러시아의 목표는 우리(우크라이나)가 중립국 지위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가 과거(1939~1940년 겨울전쟁/편집자)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중립 노선'을 받아들인다면, 러시아는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서 "우리가 나토(NATO)에 가입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러시아의 중립국 요구에 우크라이나가 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고, 러시아를 신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또 그 즈음(2022년 4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키예프에 와 '러시아와 어떤 합의도, 서명도 하지 말고, 그냥 싸우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 "그냥 싸우자'고 주장한 존슨 전 영국 총리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존슨 영국 총리와 회담한 뒤, 2022년 봄 '평화 협정' 서명을 거부했다는 일부 언론의 당시 보도를 아라하미아 대표가 확인해준 것"이라며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합의 번복 뒤에는 서방 측의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라고 풀이했다.

존슨 전 영국총리와 회담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영상 캡처

나아가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지위(나토·NATO 가입 거부)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이후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철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아라하미아 대표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의 선택에는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발언을 믿는다면, 러시아는 (독일이 양도한) 이탈리아 사우스 티롤의 전례에 따라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전체를 우크라이나에 반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서 "이는 사실상 전투 없이 (크림반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토를 해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랬다면, "2022년 4월 이후 사망한 수천, 수만 명의 군인·민간인은 아직 살아 있을 것이며, 지난 6월 반격 작전을 통해 해방하고자 했던 러시아 점령 지역들도 단 한 명의 인명 손실도 없이 돌려 받았을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안타까워했다. 또 '반대 급부'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아라하미아 대표가 설명한 중립국 수용 거부 이유에 대해서도 스트라나.ua는 의문을 제기했다. 우선, 계엄령 기간에는 헌법 개정이 금지되어 있지만,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기술적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에 대한 신뢰는, 군대를 철수하는 당사자가 러시아이기기 때문에 러시아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면 되는 것으로, 헌법 개정 불가보다 더 낯선 주장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철군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때 합의안을 파기해도 늦지 않다는 반박이다.

아라하미아 대표의 회견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러시아는 2022년 3월 말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 3차 협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선의의 표현으로 키예프와 북부 체르니코프(체르니히우)로부터 군대를 철수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고, 곧바로 이를 실행에 옮긴 바 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나중에 협상 중단의 이유로 '부차 비극'을 들었는데, 이 역시 석연찮다고 주장했다. '부차 비극'이 알려진 뒤인 2022년 4월 5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협상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나중에 그의 발언이 더욱 단호해졌다는 것이다.

◇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 태도를 바꾼 이유

젤렌스키 대통령의 협상 태도가 달라진 것은, 서방 측의 군사 지원을 받아 러시아 점령군을 1991년 국경 바깥(크림반도까지 장악/편집자)으로 밀어내고, 전쟁 배상금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할 수 있다는 서방 측의 설득에 넘어간 것으로 이 매체는 해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손에 든 새 대신에 하늘에 있는 떡(파이)을 선택한 셈"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2022년 4월 초의 국내외 상황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하늘의 떡'을 선택할 만큼 희망적이었을까?

스트라나.ua는 "당시 전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크라이나 당국이 그토록 낙관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며 "키예프 등지서 철수한 러시아군은 하르코프와 도네츠크, 루간스크 지역에서 공세를 시작했으며, 최대 격전지 '마리우폴'의 포위 작전도 계속됐다"고 회고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의 포탄 부족 현상은 점점 더 심해졌으며, 서방으로부터 대포와 포탄의 첫 배송은 4월 중순에야 시작됐다고 했다. 미국의 다연장로켓시스템 '하이마스'(Hymars)는 6월 들어 전선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만해도 서방에서 탱크와 장거리 미사일 제공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동유럽으로부터의) 소련제 전투기 공급도 차단했고, 러시아 내부에서 불안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서방의 가혹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는 무너지지 않고, 충격을 견뎌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시점이었다고 이 매체는 짚었다. 

존슨 전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리(서방 국가들)는 그들(러시아)과 아무 것도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뜻할까?

스트라나.ua는 "정답은 단 하나뿐"이라며 "서방 국가들은 러-우크라 '평화 조약'과 '중립 지위 협정'에 첨부될 우크라이나의 안보에 대한 공동 보장을 거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사진출처:오픈 소스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말하는 협상 전말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지난 10월 21일 베를린차이퉁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동 안전보장 문제가 협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우크라 간에는 2022년 봄 '5가지 사항'에 대한 협의(혹은 합의)가 이뤄졌으며, 그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공동 안전보장 문제라고 밝혔다. 5가지 사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거부 △ 공공장소에서의 러시아어 사용 금지 해제(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어 사용 허용/편집자) △ 이탈리아의 '사우스 투롤'을 모델로 한 돈바스 지역의 자치권 허용 △ 유엔 안보리(5개국)와 독일의 대(對)우크라이나 공동 안전 보장(소위 '5+1 모델') △ 크림반도의 러시아 잔류 등이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 대한 추가 협상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모든 것은 워싱턴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최종 합의가 불가능했다”면서 “그것은 (미국의) 실책"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의회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놓고 어떤 분란을 겪고 있는지 보면 그것(실책)이 분명하다"고도 했다. 

슈뢰더 전 총리 인터뷰 4개월 전인 지난 6월 중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한 아프리카 정상들에게 보여준 러-우크라 합의문 초안에는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유엔 안보리 5개 상임 이사국/편집자)외에 튀르키예(터키)와 벨라루스 등 7개국(5+2 모델)이 안보 보증 국가로 명시돼 있었다. 2022년 4월 15일자로 작성된 이 초안과 슈뢰더 전 총리의 주장과의 괴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아라하미아 대표는 이번 TV 인터뷰에서 '서방 측의 안보 압력'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는 "서방 동맹국으로부터 '일시적인 안보 보장'에 동의하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기에 러시아와 중국, 서방 강대국들이 공동으로 보장하는 국제적 안보 체제 구축을 원했다. 만약 나토(특히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참가를 거부한다면, 국제 안보 체제는 러시아와 중국, (협상 중재국인) 터키로 구성되고, 이는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서방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체제를 젤렌스키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스트라나.ua의 관측이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 3차 평화협상/사진출처:주이스탄불 러시아 총영사관

결국, 2022년 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평화 협정을 파기하기로 한 데에는, “그냥 싸우자”는 서방 측의 주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이 매체의 결론이다. 뒤집어 말하면, 대 우크라 지원 의지가 줄어들고 있는 서방 측을 향해 '계속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또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스트라나.ua는 지난 10월 슈뢰더 전총리의 인터뷰 내용을 전하면서 "러시아가 5가지 사항에 실제로 동의했다면, 부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모스크바는 2022년 2월 24일 이후 점령한 영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돈바스 분쟁 지역도 우크라이나로 돌려줄 의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슈뢰더 전 총리와 아라하미아 대표의 주장에서 확인되는 공통점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를 대가로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라고 스트라나.ua는 강조했다.

아라하미아 대표는 TV 인터뷰에서 키예프가 처한 현재의 입장에 대해 "매우 나쁘기 때문에 (러시아와) 협상을 해봐야 얻을 것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이에 대해 "시간은 과연 누구 편일까"라고 반문하며 "이제는 지난해 봄과는 달리 희생자가 더욱 늘어나는 위험한 장기전이나 점령 지역에 대한 러시아 통제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평화협상, 혹은 휴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 열받은 푸틴 대통령, 합의안 초안 공개

아라하미아 대표의 이날 발언이 나오기 전까지, 푸틴 대통령과 슈뢰더 전 독일 총리(1998년~2005년)는 서방의 간섭으로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상'을 깼다는 주장으로 일관해 왔다. 유럽에서 푸틴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유력 정치인으로 꼽히는 슈뢰더 전총리는 그러나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은 푸틴 대통령의 치명적인 실수로 보고 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베를린 차이퉁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2년 우크라이나로부터 모스크바와 키예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요청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는 루스템 우메로프 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도 개입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예컨대, 우메로프 장관과 두 차례 대화를 나눈 뒤 푸틴 대통령과 만나거나, 대통령 특사와 대화를 나눴다는 것. 하지만, 모든 것은 워싱턴에서 최종 결정되었기 때문에, '이스탄불 협상'은 "아무런 성과도 담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이스탄불 협상'에서 러시아측 수석 대표를 맡았던 블라디미르 메딘스키도 협상 후 발표를 통해 "양측은 진전을 이뤘다"며 "키예프는 또한, 안보 보장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중립 지위를 수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국 협상은 4월 중순에 막다른 골목으로 다가갔고, 5월 중순까지 협상은 중단됐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상 결렬을, 2022년 10월에는 푸틴 대통령 재임 중에는 러시아와 협상을 금지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이 2022년 봄 평화협상의 전개 과정을 공개한 것은 지난 6월 17일이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아프리카 7개국 지도자로 구성된 아프리카 평화사절단이 러시아를 찾아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상을 촉구했을 때였다.

그는 아프리카 정상들과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측이 이스탄불에서 합의한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키예프와 체르니고프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자, 그 합의문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졌다"고 비판했다.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18개 조항으로 된 우크라이나의 영구 중립 및 안보 보장에 관한 합의문"이라며 문서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의 합의문을 보여주는 푸틴 대통령/현지 매체 영상 캡처

그는 “러시아는 협상을 거부한 적이 없다"며 "잘 알다시피,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도움으로 여러분(아프리카 정상들)이 언급한 신뢰 구축 조치를 마련하고, 합의문 작성을 위해 우크라이나와 일련의 협상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수석 대표인 다비드 아르하미아가 합의문에 서명했다"며 “합의문에는 주둔 부대의 규모와 장비, 병력 숫자까지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막판에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아라하미아 대표는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측에 협상을 제안한다면, 러시아가 즉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TV 채널 '1+1' 인터뷰에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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