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간절한 목소리 "이젠 가정으로 돌려보내 달라", 러-우크라 여성들 거리로 나섰다
작지만 간절한 목소리 "이젠 가정으로 돌려보내 달라", 러-우크라 여성들 거리로 나섰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1.24 0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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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가정으로 돌려보내 달라".

최전선에 투입된 러-우크라 병사들의 아내,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작지만 간절한 목소리로 남편·자녀의 신속하고 안전한 가정 복귀를 요구했다. 확대 해석하면 '반전 시위'로도 받아들여진다.

20개월을 훌쩍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친 양국 참전 용사들의 가족들은 지난 12일 키예프(키이우)에서, 19일 모스크바에서 거리로 나서 피켓을 들고 "남편을 돌려달라"고 외쳤다. 본격적인 시위라고 부르기에는 참여자들의 숫자가 아직 너무 적다. 요구도 단순하다. 지난 해 2월 개전 직후부터 2년 가까이 전쟁터에서 싸워온 병사들을 하루 빨리 후방으로 내보내달라는 것이다. 

전장에 나간 남편 자녀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도심 시위/텔레그램 캡처
러시아 여성들의 동원 해제 요구 시위. 뒤쪽으로 공산당의 10월 혁명 지지 집회로 보이는 붉은 깃발들이 많이 보인다/스트라나.ua 텔레그램 

러시아 여성들도 매년 이맘때 쯤이면 거리로 몰려 나오는 공산당의 '10월 혁명' 지지 집회에 편승해 동원된 남편·자녀들이 배치된 최전선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복무 기간이 긴 병사들을 가족의 품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매체가 올린 텔레그램 사진들을 보면, 10명 안팎의 여성들이 공산당 집회 한 귀퉁이에서 '동원병, 이제는 집으로 돌아올 때" 등의 요구 조건이 담긴 피켓들을 들고 서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동원된 러시아 예비역들의 가족들은 지난 주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 등 주요 대도시에서 (지난해 9월 동원돼 1년을 넘긴 참전병들의) 순환 배치와 휴가, 나아가 무사 귀환을 요구하는 집회의 허가를 신청했으나, 모두 당국에 의해 거부됐다. 모스크바에서만 기습적으로 작지만 의미있는 집회가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마라 등 다른 지역 참전병 어머니들은 지자체 단체장이나 지방 의회측 대표단과 면담을 갖고 '남편·자녀들이 배치된 최전선 막사나 참호에는 쥐가 들끓는다'며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충분한 휴가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장기 복무중인 동원병들의 조속한 동원 해제도 호소했다.  

최전선 러-우크라 참모 막사에는 쥐떼가 출몰하고 있다. 사진은 관련 영상 모음/캡처

이에 앞서 우크라이나 최전선 근무 병사들의 가족 10여명은 지난 12일 키예프 도심 광장에서 “남편은 포로가 아닌 자원 봉사자다”, “18개월 복무하면 동원을 해제하라” 등의 피켓을 들었다. 참석자들은 주로 지난해 2월 개전 초기부터 최전방에 투입된 병사들의 가족들로 알려졌다. 한 여성은 "8살난 딸이 저에게 '엄마 왜 우리 아빠는 20개월 이상 군대에 있어야만 하나, 친구 아빠는 집에 있는데'라고 묻는다"며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이같은 목소리를 반영한 '군복무 기간을 18개월이하로 제한'하는 청원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과 최고라다(의회)에 제출됐으나, 대체 병력의 부족으로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인 '인민의 종'이 사태 해결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인민의 종' 다비드 아라하미야 대표는 22일 TV에 나와 장기 복무자의 순환 근무와 동원 해제, 징병 연령 기준 등을 담은 법안을 마련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2년 가까이 전쟁터에서 싸운 병사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군의 의견을 듣고 있다"며 "장애인(부상자)들을 동원 해제할 수 있는 방안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또 동원 젊은이들의 연령 문제(징집 연령을 20세에서 18세로 낮추는 방안/편집자)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말까지 국방부와 제반 문제를 협의해 법안을 만들고, 의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참전 군인들의 가족들이 목소리를 내는 상황은 우크라이나와 다를 바 없지만, 이에 대처하는 러시아 당국의 태도는 우크라이나와는 결이 다르다. 1990년대 체첸전쟁 당시, 반전 여론을 촉발한 '체첸전 참전 병사들의 어머니회'의 시위를 익히 경험한 러시아 당국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반전 시위'가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두 시위' 차단에 나섰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와 더 인사이더(The Insider) 등은 러시아 당국이 16~18일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준비 세미나에서 "어머니들의 시위가 불순한 의도를 지닌 세력에 의해 이용돼 러시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적극적인 차단을 주문했다고 20일 보도했다. 당국은 또 참석 지자체 관리들에게 그들(어머니회)과 접촉해 문제 해결을 앞장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일부 소식통은 "(그들을) 설득하고, 약속하고, 적어도 50명까지는 돈을 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코메르산트는 내년 대선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친 국민을 안정시키는 '심리 치료'와 같은 행사로 치러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부분동원령에 의해 징집된 러시아 예비역들과 작별하는 가족들의 모습

소셜 미디어(SNS) 텔레그램 채널에는 최근 몇 주간 러시아 일부 대도시에서 참전 군인들의 아내와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서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포착됐다. 그 중 일부는 연방정부와 지자체 단체 등에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자원 입대자(러시아 국방부와 계약한 병사들/편집자)가 아닌 동원 예비역들은 전투 행위에 투입돼선 안 된다"며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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