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전쟁'으로 번진 우크라 전선 - 선전 영화로, 홍보 영상으로 계속 진화하는 중
'영상 전쟁'으로 번진 우크라 전선 - 선전 영화로, 홍보 영상으로 계속 진화하는 중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9.04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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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영상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약없이 늘어지면서 러-우크라 양국은 서로 상대를 겨냥한 각종 홍보 영상을 제작, 배포하는 등 '영상 전쟁'에 깊숙히 뛰어든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러시아가 끌고 우크라이나가 뒤따르는 모양새다.

가장 화끈한 영상은 바로 전선에서 활용이 가능한 짧은 영상. 상대 군인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항복해 목숨이라도 건질 것을 권하는 게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제작한 항복 촉구 영상/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지난달(8월) 말 러시아군에게 항복을 권하는 영상을 제작, 공개했다. 제목은 '살고 싶다'(Хочу жить). 웃기는 것은 바로 얼마 전에 공개된 러시아의 항복 권유 영상을 그대로 가져와 일부만 고쳐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언뜻 보면 같은 영상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러나 적의 포위 공격앞에 두려워하는 병사를 러시아 군인으로 만들고, 내용은 좀 줄이되 감정에 호소하는 대목을 보충했다. "이제사 어떻게 속았는지 알겠느냐?"고 묻는 부분이다. 스트라나.ua는 전투를 거부하는 러시아 군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영국 정보국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일주일에 약 100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전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다는 것이다. 

◇ 부차와 마리우폴 배경 '영화 전쟁'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영화 경쟁'도 불꽃을 튀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도시로 이미 각인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 외곽의 부차와 남부 마리우폴이 영화의 실제 배경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두 영화 모두 자국민들에게조차 그리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의 아조프 연대가 결사저항한 '마리우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유리크, 이 땅에는 없는 길'(Юрик. Дорога не касаясь земли. 이하 '유리크')는 마리우폴에서 대피한 주민들로부터 "쓰레기"라는 혹평을 들었다. 독립 기념일(8월 24일)에 맞춰 이 영화를 방영한 TV 채널 'STB'에는 "완전 X판"이라는 비판으로 가득찼다. 영화가 당시 상황을 너무 모르고, 현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영화 '유리크'의 한 장면(위)와 비판 SNS/캡처

영화는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아파트가 무너지고, 아버지와 누이, 할아버지를 잃은 11세 소년 '유리크'의 눈을 통해 참혹한 '마리우폴 엑소더스(탈출)'를 다룬다. 소년은 부상당한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어떻게든 살아남아 마리우폴을 떠나려고 한다. 

마리우폴을 떠나온 한 주민은 "영화속에서와 달리 당시 마리우폴에는 주민들의 대피를 촉구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차량의 확성기도, 이동통신(휴대폰)도, 빛(전기)도, 음식도, 물도 없었다"며 "머리 위로 포탄만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공포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저항군들과 주민들의 영혼과 얼굴에 '침을 뱉은' 영화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또 다른 주민은 "이 영화는 마리우폴에 있지도 않은 장면으로 당시 상황을 왜곡했다"며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마리우폴 주민들은 왜 떠나지 않았는지, 바보가 아닌지 생각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시장부터 시 당국은 조용히 도망갔고, 사람들간에 소통이 안되는 바람에 3주 동안 부모님 안위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OSCE도 도시를 떠났고, 아조프 연대와 마리우폴 순찰 경찰만이 남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17일 러시아에서 개봉된 '목격자'(Свидетель)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TV채널 NTV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영화는 '부차'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벨기에 출신의 바이올린 거장 다니엘 코헨(Daniel Cohen).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재벌)의 초청을 받아 '세미드베리'라는 도시로 공연을 왔다가 목격한 비인도적인 범죄 행위를 증언하는 형식의 영화다. '세미드베리'는 '부차'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도시다.

주인공 코헨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세력(네오나치)에 의해 고초를 겪지만, 그가 본 많은 범죄들은 끔찍했다. 거기에는 소위 '부차 학살' 사건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폭격,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의 비극 등을 연상시키난 장면들이 포함된다. 러-우크라·서방 간에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이 사건들이 바로 '네오나치'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목격자'의 장면들/캡처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뮤지션'이었으나, '바그너 그룹'의 6·24 군사반란 이후 '목격자'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의 흥행 실적도 좋지 않다. 개봉 2주간 제작비 2억 루블(약 27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1,400만 루블(약 1억9천만원)의 흥행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영화 전문가들은 '전쟁 자체를 외면하는 러시아인이 늘면서, 전쟁 선전용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며 "영화 홍보나 마케팅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쟁에 대한 불안과 시름을 잊게해 주는 가족용 오락 영화 '체부라쉬카'는 여전히 박스오피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 군입대 촉구 홍보 영상

자국민 남성들을 겨냥해 군입대를 촉구하는 영상물도 나오기 시작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선의 병력 손실을 보충할 예비군 동원, 혹은 징집 활동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반증이다. 

러시아가 제작한 온라인 모병 광고는 일반 시민이 첨단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는 '멋진 전사'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군 복무를 남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당신은 남자가 아닌가요?"라는 자막까지 내보낸다. 동시에 가장으로서 평균 이상의 봉급(20만4천 루블·약 2천 달러 부터)과 군 복무 수당을 받을 수 있다며 군입대를 부추긴다.

'당신이 바로 남자'라는 문구를 앞세운 러시아 모병 광고(위)와 두려움을 극복하자는 메시지의 우크라이나 영상/캡처, 페북 @AFUkraine 

스트라나.ua(8월 17일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 비슷한 영상을 제작해 내보내기로 했다. 주요 메시지는 '군사위원회'(병역 및 입영 사무실)에 가는 일이 절대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용기"라며 "우크라이나 군대에서는 그런 용기를 지닌 용감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선에서 두려움을 극복한 경험을 들려주는 군인들도 등장한다.

우크라이나군 당국은 이 영상을 TV 채널과 영화관, 디지털 옥외 광고 등으로 내보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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