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태로 본 러시아의 '글로벌 분쟁 비즈니스' 분석
베네수엘라 사태로 본 러시아의 '글로벌 분쟁 비즈니스' 분석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5.04 0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정치 사회적 혼돈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임시대통령을 선언한 과이도 국회의장은 급기야 '군사 쿠데타'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진압에 성공했다고 큰소리쳤다.

미국과 러시아는 장외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3일 전화로 베네수엘라 사태를 논의했고, 미-러 양국 외무장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양국은 여전히 사태 해결방안에 대해 평행선을 긋고 있는 듯하다.

언론도 나섰다. 특히 미국 언론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원하는 푸틴 대통령을 향해 '프레임 공격'을 최근 부쩍 강화한 모양세다. '깡패 국가 제국'(타임), '글로벌 분쟁 비즈니스'(월스트리트저널)란 악의적인(?) 틀 속에 푸틴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가두기 시작했다. 국제사회, 즉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독재 정권이나 내전 국가, 테러 집단 등의 취약한 입지를 파고들어 정치경제적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다.

일부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미국의 대외정책은 늘 정당하고 당당한가?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적 시각이다. '세계 경찰국가'란 미국 이미지는 표현만 다를 뿐, 러시아와 다를 바 없는 미국의 제국주의 노선을 보여준다.

그래서 미국 언론의 공격 자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정치적 후퇴, 혹은 패퇴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표적인 곳이 시리아다.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으로 그 판도가 완전히 바꿨고, 인근 지역에서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은 미국을 넘어섰다. 미국은 명분있는(?) 시리아 철군을 추진중이다.

(퇴진 요구를 일축한 데 따른) 내전으로 37만명이 사망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53) 대통령이 2015년 첫 해외 방문지로 모스크바를 택한 것을 러시아의 '글로벌 분쟁 비즈니스'로 미 언론은 연결했다. 혼돈 상태에 빠진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수단의 30년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75) 전 대통령 등이 수 차례씩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도 같은 프레임 속으로 우겨넣는다.

웃기는 건 리비아를 다시 내전 위기로 몰고 간 반군 수장 칼리파 하프타르(76) 장군에 대한 평가. 그가 '평화 협상'을 명목으로 모스크바를 오간 것을 같은 이유로 비판해온 미국이 최근 하프타르 장군을 지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하프타르 장군에게 전화를 건 뒤 사실상 지지를 선언했다.

미국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분명하다. 국익이다. 러시아가 하프타르 장군을 지원해 '포스트 가디피' 정권을 전복할 경우, 군사적으로 가다피 정권을 몰아낸 뒤 확보한 미국의 유전 비즈니스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지지를 선언하면 최소한 절반의 기득권은 지킬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왔을 것이다. '고위험 고수익'의 분쟁 비즈니스 틀 안에서 푸틴 대통령 비난에 앞장선 미 언론은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미 언론은 푸틴 대통령과 연계한 국가들의 공통점을 폭력과 부패, 인권 탄압 등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 제재를 받는 국가라고 지적한다. 거꾸로 그들로서는 (미국의 제재를 받는) 같은 처지에 있는 러시아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또다른 동서 냉전이다. 과거에는 소련이 공산주의 이념을 확산하기 위해 먼저 나섰다면, 이제는 미국의 압력에 직면한 국가들이 러시아로 지원을 요청하는 게 다르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와 전통적 군수 산업 등을 앞세워 그들을 지원하고,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준다. 그 대신 경제적 이득, 즉 러시아 국익을 챙긴다. 타임지도 "푸틴 정권의 독재 국가 지원이 냉전 시절과 양상이 다르다"며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에서 러시아와 군사 협정을 맺은 23개 국가 중엔 사회주의나 반서구를 표방한 경우도 있지만, 내전 중인 나라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분쟁 비즈니스'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부인히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 브레인으로 알려진 안드레이 클리모프 상원 의원은 "(우리는) 외국에 과거처럼 특정 이념을 심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의 이익을 지키러 간다"고 말했다. 탈이념 시대에 당연한 흐름으로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이 흐름을 유독 푸틴 정권에만 적용해 '고위험 고수익' 비즈니스라고 정의한다.

미국 등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가만히 앉아서 '죽어라'는 이야기인데,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인다. 리비아 사태에서 보듯, 분쟁 당사자를 잘 선택하면 무기 수출이나 자원 확보등 향후 독점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데 '마다 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내전 중인 수단·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러시아의 외교적 보호와 군사 지원의 대가로 금·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 무기 시장을 열어줬다. 베네수엘라와 리비아 핵심 유전도 러시아 국영 석유사 로스네프트 등에 헐값에 넘어갔다. 지난해 러시아의 무기 수출 독점 계약이 500억달러를 돌파했다고 하지만, 전세계 무기 수출 1위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대 아프리카 정책을 평가한 미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재미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재건 원조로, 중국은 대규모 자본 투자로, 러시아는 독재 엘리트에 대한 군사 지원으로 공략 대상 국가를 장악한다"고 했다. 현지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나, 기준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미국의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는 단순한 정의다.

미국은 아프리카 전역에 약 6,000명의 군병력과 1,000명의 국방부 소속 민간인 또는 계약자(용병)들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주둔 국가의 군대를 훈련시키거나 훈련을 통해 군사작전 시 손발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아프리카 독재 국가들과 무기 수출, 보안 협정, 훈련 프로그램 등의 계약을 체결하며 진출한 러시아와 무엇이 다른가?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냉전 시절 아프리카에 진출한 소련(러시아)은 붕괴 후 대부분 철수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러시아는 모잠비크나 앙골라 등 구소련의 고객들과 다시 관계를 맺었다. 지난 2017년 러시아 전체 무기 수출액의 13%가 아프리카로 갔다.

러시아의 다국적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도 시비의 대상이다. 2015년부터 우크라이나·시리아·수단·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 군사 기술·정보를 이용해 반정부 시위를 제압하고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을 암살하고 있다고 미 언론은 주장한다. 또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인터넷 여론 조작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증거로 뉴욕타임스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서 발생한 러시아 언론인 살해 사건을 든다. 러시아 반체제인사이자 전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의 자금지원을 받아 '바그너 그룹' 활동을 취재하러 간 러시아 언론인 3명이 살해됐다. 사건의 실체는 아직 제대로 파악된 게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푸틴은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2011년 반정부군과 국제연합군에 끌려나와 죽는 동영상을 끝없이 돌려본 뒤 반미 연합 전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는 대목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강한 군사적 압력에 버티던 지난해, 김정은의 태도와 심리를 분석할 때 나온 그 각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