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에도 개입했다고? 진짜 마녀사냥
러시아가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에도 개입했다고? 진짜 마녀사냥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8.12.11 0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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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상으로 촉발한 서민시위인데, "빵을 달라' 동유럽 민주화 시위와 달라?
현장 취재의 기본은 일단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체 흐름과 함께 전하는 것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는 프랑스 시민의 대규모 ‘노란 조끼’ 시위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 대변인은 10일 "러시아를 모욕하는 중상모략일 뿐이다. 우리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즉각 부인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사진출처: 크렘린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사진출처: 크렘린

일련의 과정을 보면, '러시아 스캔들'로 특검에 몰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늘 주장하는 '마녀사냥'이 바로 이런 경우에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러시아 스캔들'이야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노란 조끼' 시위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소위 '마크롱판 대서민 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다. 정치적 동기를 끌어대기에는 부적절한 '사회 경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도 10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서둘러 자신의 정책적 과오를 인정하고, '노란 조끼' 집회에서 분출된 요구들을 대폭 수용하기로 했다. 유류세 인상은 시위 초기에 일찌감치 접었고, 최저임금 인상과 저소득 은퇴자의 사회보장세 인상 등도 이번에 철회했다. 

사실 프랑스의 기존 체제를 바꾸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야심찬 개혁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전세계의 관심사였다. 유명 관광지인 파리 개선문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노란 조끼' 시위대는 지구촌 보통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외신들은 '노란조끼'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했고, 큰 사건이 터지면 으례히 그렇듯이 SNS에는 현장 사진과 동영상은 물론, 다양한 의견들이 넘쳐났다. 찬반 논조는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에 러시아가 끼어들었다고 한다. 

RT의 20일자 보도 내용/
노란조끼 시위대가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지켜보는 장면의 RT보도/사진출처: RT관련 부분 캡쳐
RT의 20일자 보도 내용/
마크롱 대통령의 대 국민연설에 대한 RT보도/사진 출처:RT 캡처

비슷한 사건이 러시아CIS나 동유럽, 중동의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하자. 아마도 미국 유럽등 서방 언론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달면서 보도를 시작했을 것이다. 비슷한 경우 "빵을 달라"는 제목을 달았던 기억이 난다. 여기에 비하면 러시아측 언론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 개입설이 나왔을까? 러시아와 연관된 소셜미디어 SNS 계정이 노란조끼 시위 확산을 목표로 활동했다는 멋대로 추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사이버 활동을 감시하는 미국의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독일마셜펀드(GMF) 산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동맹'(ASD)는 친러시아 성향의 트위터 계정 600여개가 프랑스어로 노랑조끼를 뜻하는 '#giletsjaunes' 해시태그 사용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ASD가 모니터링하고 있는 트위터 계정들은 주로 미국이나 영국 소식을 전하지만, 최근 일주일 동안 프랑스에서 벌어진 노란조끼 시위가 그들의 핵심 활동 주제가 됐다고 했다. 이게 러시아 개입 추정의 근거다.

정말 해괴한 논리 전개다. 프랑스에 전에 없던 대형 관심사안이 터졌는데, 그것도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정책이 주목을 받았는데, '노란조끼' 시위에 대한 계정의 활동이 느는 것은 당연하다. 외신더러 왜 미국 영국 뉴스보다 '노란조끼' 시위 뉴스가 많으냐고 시비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용도 문제삼고 있다. ASD의 한 분석가는 언론에 "친 러시아 관련 계정들이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를 퍼나르고 있으며, 서방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로 인용하는 매체가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와 러시아투데이(RT) 등이라며 시비를 거는데, 당연하다. 현지에 취재를 갈 만한 언론사가 러시아에는 국영 타스통신이나 노보스티 통신을 제외하면 스푸트니크와 RT 정도다.

한국에도 세계 곳곳에 특파원을 두는 매체가 연합뉴스외에는 없다. 그러니 모든 언론매체, 블로그나 카페 들이 연합뉴스 발 기사를 받아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이나 러시아나 다를 게 없다.  

시비를 거는 스푸트니크와 RT의 기사를 보자. 두 매체는 "더 이상 프랑스 경찰이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으며, 노란조끼 시위대 편에 섰다"고 전했다. 이들의 취재원이 지난 경찰노조 선거에서 득표율이 4% 미만이었던 소수 세력 2개의 대표였다고 미 블룸버그 통신은 지적했다. 외국 언론은 야당의 주장을 인용하면 안된다는 논리다. 웃기는 이야기다.

두 매체는 포(Pau) 지역의 경찰들이 자신의 헬멧을 벗어던지는 영상을 전하면서 이들이 시위대와 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시비를 건다. 이 장면은 경찰들이 시위대측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헬멧을 벗은 순간 찍혔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악의적이라는 주장인데,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지 않으면 모른다.

과거 1980년대 국내 시위 현장에 취재를 나가면 눈에 보이는 것부터 쓴다. 보지 않은 걸 쓰는 건 작문이다. 분신하는 학생을 취재하고 촬영한 걸 두고, '왜 분신을 막지 않았느냐?'고 하는 것은 언론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현장에 언론만 가 있나? 막을 사람은 넘쳐났다. 그래도 못막았다. 

RT는 이번 노란조끼 시위를 취재하면서 자사 기자 1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취재 환경이 나빴다는 이야기다.

러시아 개입설을 가장 먼저 주장한 측이 영국의 '더 타임스'였다. 이 신문은 지난 8일 소식통을 인용, 러시아와 관련한 SNS 계정 수백개가 노란 조끼 시위에 따른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려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자체는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중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는 최악인 상황에서 지적할 수 있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러시아가 지난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을 저지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 않는가?

그 이후가 문제다. 더 타임스가 불을 지피자 미국과 프랑스 등 유럽 언론이 뒤를 이었다. 같은 목적이다. 무조건 사안이 불리하면 러시아가 배후에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마녀사냥이자, 러시아 조지기다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보 당국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며, 결론이 나올 때까지 관련 논평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중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이번 사태는 프랑스의 국내 문제로 보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서방측을 향해 '너나 잘하세요' 하는 충고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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